2D 장편 애니메이션인 <치코와 리타(2011)>와 <링클스(2011)>는 흥행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 작품이란 찬사를 받으며 스페인 애니메이션을 전 세계 관객들에게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솔직히 개봉된 장편들을 보기 전에는 스페인 애니메이션은 스톱모션 초창기 시대의 인물인 ‘세군도 데 체몬 / Segundo de Chonlon’외에는 별다른 기억이 없었죠. 그러나 최근 스페인 애니메이션계의 과감한 행보는 각국의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전 세계 애니메이션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 스톱모션 장편 애니메이션인 <포제스드/Possessed>가 현지에서 개봉되었습니다.

공개된 트레일러의 첫인상은 아드만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것이라 착각할 만큼 아드만 판박이여서 놀랐습니다. 관련 기사 검색에서 감독이 아드만에서 10여년을 근무한 애니메이터 출신이라는 기사를 읽고 살짝 웃었습니다. 스톱모션 현장에서 우스갯소리로 일단 손이 작업 스타일을 기억해 버리면 잘하든 못하든 평생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작품의 감독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감독의 애니메이팅 실력뿐만 아니라 퍼펫 및 세트의 디자인과 디테일이 나무랄 데가 없더군요. 돌이켜보면 십여 년 전만 해도 스페인에서 제게 정보 교류와 제작에 관련된 질문 메일들이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높은 실력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부럽기만 하네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상업 애니메이션의 흥행에 대해서 걱정을 해봅니다. 감독의 이전 작품을 고려해 볼 때 이번 작품은 업계에서 흥행에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타겟층, 즉 유아용이나 어린이용보다 연령대가 많이 높습니다. <치코와 리타>같은 2D 장편의 경우 예술성을 전면에 내세웠던 반면, <포제스드>는 재미를 목적으로 한 상업영화란 점에서 타켓층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코와 리타>와 비슷한 연령대- 성인층에 맞춰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는 사실에 조금 의구심을 가져봅니다. 애니메이션이 꿈과 환상이라는 것을 믿는 관객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장에서 타겟층의 연령대가 비교적 높은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흥행성적이 궁금하기 그지없습니다. 왜냐하면 장편 스톱모션은 우리 업계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 중에 하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영화나 단편의 경우 흥행이 감독에게 중요한 부분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 자본과 많은 인력이 들어간 상업영화나 장편애니메이션의 경우는 흥행에 대한 입장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포제스드> 전편을 감상해 보지는 않았지만, 감독이 손으로 기억하는 아드만의 스타일만큼 오류까지도 닮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스페인의 애니메이션계의 꾸준한 도전과 실험을 부러운 마음으로 응원해 봅니다 그리고 편애가 심한 우리 애니메이션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순수 국산 스톱모션 장편이 언젠가 개봉될 날을 기다려 봅니다.